최근 검색창에서 대정친목회, 대정실업친목회, 하영 증조부 안상호가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과 증조부의 의료 이력을 소개한 뒤,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있었다는 기록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소속사는 처음의 ‘사실무근’ 입장을 정정하고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대정친목회는 이름처럼 단순한 친목 모임이었을까요? 확인 가능한 역사 자료와 최근 보도를 기준으로 단체의 성격, 안상호 논란,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뜻하는 바를 차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차
1. 대정친목회는 어떤 단체였나
대정친목회의 정식 명칭은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입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이 단체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 단체”로 설명합니다. 1910년 강제 병합 뒤 일제가 집회와 결사를 강하게 억압하던 무단통치기에 만들어졌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겉으로 내세운 목적은 회원 간 친목, 정신 수양, 산업 발전, 근검저축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연구 과제에는 법령을 널리 알리고 납세·위생·질서를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이를 조선 민중이 일제의 무단정치에 순응하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 구분 | 확인 내용 |
|---|---|
| 정식 명칭 | 대정실업친목회, 흔히 대정친목회로 불림 |
| 창립 | 1916년 11월, 서울 |
| 구성 | 경제인·관료·언론인·교육자·법조인·의료인 등 경성의 유력층 |
| 역사적 성격 | 총독정치를 인정하고 ‘내선융화’를 내세운 친일 성격의 단체 |
2. 누가 참여했고 무엇을 했나
대정친목회는 1921년 조직을 개편하면서 조선귀족, 대지주, 예속자본가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당시 회장은 민영기, 부회장은 조진태였고 이완용·민영휘·이윤용 등이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회원 수는 250명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단체가 앞세운 말은 ‘한·일인의 친목’, ‘산업 발전’, ‘교육 보급’처럼 온건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역사 자료에서는 민중의 반일 독립 의식을 식민통치가 허용하는 방향으로 돌리고, 일제가 주장한 일선융화 또는 내선융화를 선전하는 기능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대정’은 당시 일본 다이쇼 천황의 연호인 다이쇼(大正)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름부터 식민지 시기의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단체의 성격을 판단할 때는 현재의 ‘친목회’라는 어감이 아니라 설립 시기, 구성원, 강령과 실제 활동을 함께 봐야 합니다.
3. 하영 증조부 안상호 논란의 핵심
최근 논란은 배우 하영이 2026년 8월 7일 방송에서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우고 한국에서 개원한 초기 의사였으며 집안이 4대째 의료업을 이어왔다고 소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방송 뒤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과 과거 행적이 온라인에서 재조명됐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상임연구위원의 2007년 논문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선출된 대정친목회 간부진에서 21명의 평의원 중 한 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영의 소속사도 추가 확인 뒤 해당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충분한 검증 없이 처음에 사실무근이라고 답한 점을 사과했습니다.
안상호에게는 근대 의료인으로서의 이력도 존재합니다. 일본 의사자격을 취득했고 고종과 순종의 진료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소개돼 왔습니다. 동시에 친일 단체 평의원 경력과 일본식 생활을 강조한 당시 기사도 논란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한 인물의 공적 이력과 식민지 협력 정황을 어느 한쪽만으로 지워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4. 친일인명사전 미등재는 무슨 뜻일까?
안상호는 2009년 발간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 때문에 “사전에 없으니 친일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단체 간부였으니 친일 행적이 확인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친일인명사전의 수록 기준 충족 여부와 개별 친일 행적의 존재 여부입니다. YTN 보도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처장은 안상호의 경우 적극성과 반복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당시 수록 기준에는 맞지 않았지만, 친일 행적에 관한 사실은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핵심 정리
사전 미등재는 곧바로 ‘아무런 친일 행적이 없다’는 증명도 아니고, 반대로 단체 명단 하나만으로 모든 행위의 정도가 확정됐다는 뜻도 아닙니다. 단체의 성격과 직책, 참여 기간, 발언과 후속 활동을 자료별로 따져야 합니다.
5. 조선일보 창간과 대정친목회의 관계
대정실업친목회는 1920년 조선일보 창간 초기와도 연결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에 따르면 조선일보 창간 발기인 39명 가운데 11명이 대정실업친목회 소속이었고, 사장 조진태와 부사장 예종석 등 초기 경영진도 이 단체 회원이었습니다.
다만 이 관계를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단정하면 부정확합니다. 우리 역사넷은 창간 약 5개월 뒤인 1920년 8월 대정실업친목회와의 관계를 청산했고, 1924년 신석우 등이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민족진영 중심으로 운영 방향이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초기 창간 배경과 이후의 변화는 함께 적어야 역사적 맥락이 왜곡되지 않습니다.
6.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조상의 행적을 기록하고 검증하는 일과 후손에게 조상의 책임을 그대로 묻는 일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이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 때문에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이른바 연좌제를 경계하는 조항입니다.
따라서 안상호의 행적은 자료에 따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배우 하영 개인을 ‘친일파’라고 부르거나 작품 활동까지 공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다만 공개적으로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뒤 새로운 기록이 확인됐을 때 어떤 태도로 사실을 바로잡는지는 공인의 대응에 대한 별도 평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7. 자료를 볼 때 주의할 점
첫째, 명단의 존재와 구체적 행위의 정도를 구분해야 합니다. 평의원 경력은 중요한 기록이지만 한 개인의 전체 활동을 판단하려면 참여 기간과 발언, 다른 단체 활동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기사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오면 안 됩니다. 연합뉴스·방송사·연예매체의 배우 사진은 대부분 저작권이 있으므로 원문 링크만 걸고 본문에 재업로드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 오래된 사료도 출처를 표시해야 합니다. 공공누리나 퍼블릭 도메인으로 확인된 사진을 사용하더라도 작품명, 제작 시기, 소장처와 이용 조건을 이미지 아래에 적는 것이 좋습니다.
8. 마무리와 공식 확인처
대정친목회는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라 1916년 식민지 조선의 유력층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일제 통치와 내선융화를 뒷받침한 친일 성격의 단체였습니다. 안상호가 평의원 명단에 있었다는 기록도 확인됐지만, 친일인명사전 미등재의 의미와 개인 행위의 정도는 자료에 근거해 세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후손을 공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한 인물의 빛나는 이력만 전해질 때 가려질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을 함께 확인하고, 공과 과를 사실에 맞게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본문 이미지로 활용하기 좋은 링크
• 1910년 서울 시장 사진 ― 퍼블릭 도메인 표시 확인 가능
• 1904년 서울 서대문 일대 사진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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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6년 8월 13일 기준 공개된 역사 자료와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추가 사료나 공식 판단이 공개되면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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